본문 바로가기
TV 프로그램/세계사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속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우스 시저)

by young@ 2020. 12. 20.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두 번째 시간의 주제는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에 대해서는 다시 정리해서 따로 글을 올릴 예정이고요. 클레오파트라의 두 번째 남자로 설명된 율리우스 카이사르 일명 시저에 관한 내용도 엄청 많고 보다보니 예전 세계사에서 배웠던 내용들이 다시 생각나더라고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저)에 관한 내용만 따로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일화 소개-상남자 스타일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일화도 소개했었는데요. 카이사르는 청년일 때 그리스에서 유학했다고 합니다. 유학이 끝나고 로마로 돌아오는 길이 지중해였는데요. 거기에서 해적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퀴즈로 

 

Q. 지중해 한복판에서 납치된 카이사르는 어떻게 해적으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을까요?

 

당시 해적이 요구한 몸값은 20달란트(현재 시세로 1300억 정도) . 

카이사르는 로마까지 오면 몸값을 50달란트 주겠다고 약속.  그 후 로마에까지 오는 동안 해적들의 우위에 서서 행동.

정말 로마에 도착한 후 약속대로 50달란트 지불

=> 돈을 빌려 군함을 사고 해적을 쫒아가서 해적 소탕. 십자가에 다 매달아 죽였다고 함. 

 

율리우스력

현재 우리가  1년 365일을 쓰게 되는 달력을 만든 사람이 율리우스라고 함.

달력에서 7월을 의미하는 July는  율리우스(줄리우스) 카이사르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함. 

로마의 공화정과 삼두 정치 

그 당시 로마는 공화정이었으며 당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성과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던 크라수스, 폼페이우스와 손을 잡고 원로원의 방해를 이기고 집정관에 당선되어 세 명이서 1차 삼두 정치를 시작. 

 

갈리아 전쟁 승리와 카이사르의 성장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에 출정해서 9년 전쟁( 다른 자료는 7년이라고 함)에서 승리를 거둠. 

삼두 정치가 붕괴되고 크라수스가 전사하는 상황에서 카이사르의 성장을 경계하던 원로회에서 폼페이우스 회유

원로원의 귀족들은 카이사르에게 즉시 군대를 해산하고 갈리아 총독에서 물러나 단신으로 로마로 돌아올 것을 명령

 

이때 카이사르의 명언들이 나오는데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루비콘 강을 건넜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무장한 상태로 로마 진격. 우리 나라 위화도 회군 같은 상황

 

파르살루트 전쟁(내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권력 전쟁 내전. 

=>패배로 폼페이우스 이집트로 도망

 

당시 카이사르의 오른팔이었던 안토니우스에게 로마를 맡기로 이집트로 진격

 

당시 이집트의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13세(클레오파트라의 남동생)이 폼페이우스 죽인 후 카이사르에게 보냄. 

=> 카이사르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카이사르의 분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

프톨레마이우스 13세에게 밀려 권력에서 멀어져있던 클레오파트라 7세가 기지를 발휘하여 양탄자 속의 선물로 위장하여 카이사르를 만나러 가고 유혹.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의 연애와 클레오파트라의 권력으로의 복귀.

프톨레마이우스 13세는 카이사르의 클레오파트라와의 공동통치에 반발하여 싸우다 전사. 

 

이집트에서 5개월 이상 머물다 로마로 입성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이 말 역시 카이사르가 로마에 개선할 때 한 말이라고 하네요. 

카이사르는 명언 부자네요. 

 

클레오파트라는 아들 출산(카이사리온)하고 로마로 입성. 

카이사르의 독재?

1. 독재관 6개월 후 10년으로 연장

2. 보라색 망토(당시 보라색 염료가 엄청 비쌈)에 월계관을 매일 쓸 수 있는 권한 획득. 

   당시 머리가 빠지고 있던 상황이라 월계관을 매일 쓸 수 있는 사실을 정말 좋아했다고 함. 

 

3. 로마신전 비너스 옆에 클레오파트라 동상 설치 => 로마인들이 극대노했다고 함. 

 

4. 종신독재관 선언=> 원로원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함. 

 

한 역술인에게 점을 봤는데 3월 15일을 조심하라!는 조언

 

카이사르는 대수롭지 생각하지 않음. 3월 15일 집앞에서 한 지지자가 쪽지를 줬는데 쪽지를 읽지 않고 원로원 회의장으로 향함. 회의장 앞에서 그 역술인을 만났는데 오늘이 3월 15일인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자 역술인이 네 3월 15일인데 아직까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네요. 하지만 여전히 3월 15일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함. 쪽지에는 원로원들의 암살계획을 알리는 쪽지였다고 함. 

 

원로원 회의장 화랑에서 공격을 받고 23곳의 자상을 입고 사망. 사망하기 전에 또 유명한 명언 한 마디.

 

"부루투스 너마저." 부루투스는 당시 카이사르의 왼팔 격에 해당하는 최측근. 

 

사망 후 유언장 공개에서 후계자로 옥타비아누스(카이사르 누나의 손자, 당시 18세)를 지목함.  

 

이 옥타비아누스(또는 아우구스투스)가 훗날 고대로마의 초대황제가 되며 달력의 8월 August가 아우구스투스 이름에서 유래.  카이사르는 자신이 암살 당할 것을 모르고 긴 기간을 두고 후계자 수업을 하려다가 못하게 된 상황. 제 2 후계자로 지목한 사람이 바로 부루투스였다고 함.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면서 예전에 배웠던 세계사 내용들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잊고 있었던 봉인되었던 지식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도 들고요.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도 좋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세계사 공부, 설민석의 벌거벗은 세계사 2편 클레오파트라와 세 남자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댓글